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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대 총선-“숫자 뒤에 숨은 한 사람”을 보라 - 최지훈 청년
거대넷 조회수:6237
2016-04-11 13:48:00

20대 총선-“숫자 뒤에 숨은 한 사람”을 보라

 

최지훈 (1992년생)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4학년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회원
(사) 대한민국 건국회 청년단 회원

 

 

소비에트 연방을 지휘했던 지도자가 있었다.
그는 신이 되려고 했다. 그것도 광(狂)적인 신.
일단 문제가 생기면 말보다 총칼이 앞섰다. 
살인은 그에게 곧 통치 수단이었다.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피의 숙청은 소련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 
학살자 수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희대의 살인마, 스탈린이다.

그는 말했다.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고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맞는 말이다. 
수백만 명의 비보(悲報)보다 한 명의 기구(崎嶇)한 운명이 마음을 더 크게 뒤흔든다.
이 한 명에게 우린 기꺼이 눈물을 흘려줄 여유가 있지만, 수백만 명에게는 그렇지 않다. 
남는 건 숫자, 통계 수치가 전부다.

왜 그럴까? 
대형 참사로 빚어진 피해와 고통은 개인이 겪은 고통보다 분명히 더 큼에도 
왜 우리의 마음은 동(動)하지 않을까? 
나 말고도 다른 이들이 같이 슬퍼해주고 있다는 일종의 책임분담 때문일까?

스탈린, 인정사정없이 죽임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냉혈한(冷血漢).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숫자 뒤로 숨겨버린 그의 말은 
지금 우리 안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 1990년대 북한에 닥친 최악의 식량난 사태, 고난의 행군.
이때에만 300만 명에 이르는 아사자(餓死者)가 발생했다.

* 북한판 홀로코스트, 정치범 수용소.
이곳에 갇힌 자들은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인간답게 대접받지 못하고 죽는다. 
확인된 사상자만 40만 명이다.

휴전선 너머에 있는 북한 주민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우리의 반응은 대개 이렇다. 
“300만 명? 와, 정말 끔찍하다.” 
“40만 명? 아휴, 참 안됐네. 쯧쯧.”

이게 끝이다. 
불쌍하다는 생각, 측은한 마음. 딱 여기까지다. 
숫자 뒤에 숨은 ‘한 사람’을 보지 못한다. 
그러니 그가 겪었던 고난과 슬픔을 느낄 수 없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뭔가를 할 수도 없으며, 
북한의 실상을 알려고 하는 마음이 들지도 않는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분단 70년이 넘은 지금, 북한 주민을 같은 민족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겹겹이 흐르는 세월의 물줄기에 북한에 대한 동포애도 같이 떠내려 가버렸다.
바쁜 일상에 지친 우리의 감정은 이미 메마를 대로 메말랐다.
북한 주민들은 그저 ‘아무나’ 일 뿐이다.

▲ UN을 울린 오준 대사의 연설. 그는 “먼 훗날 우리가 한 일을 돌아볼 때, 우리가 북한 주민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길 기원한다.”고 했다(자료사진)
 

 

 

 

 

 

 

 

 

‘통일대박!’ 한창 이 구호가 유행이었다.

여기에 맞서 ‘통일 쪽박’이란 말도 나왔다. 
‘통일 대박론 vs. 통일 쪽박론’
이렇게 비용과 편익을 따지는 사람들에게, 북한에서 굶어죽고 맞아죽고 얼어 죽어가는 사람들은 한낱 숫자들이었다. 
연대, 평화, 대화 운운하면서 북한 주민 인권을 위한 법안을 이제야 통과시켰다. 
더불어 살겠다는 다짐은 어디로 갔는지 찾기 어렵다.

북녘의 주민들은 지금도 목숨을 걸고 압록강, 두만강을 건넌다. 
압록강에서는 “인간 사파리”가 관광 상품으로 팔린다. 
먹이를 던지면 북한 사람들이 기어 나와 음식을 받아간다.
내 민족, 내 동포가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가 있는 곳, 바로 북한이다.

주변 사람들이 묻는다. 
“설마 21세기에 그런 나라가 있겠어?”
“탈북자들의 증언을 우리가 어떻게 믿어?”
“도발하면 안 돼. 그래도 대화로 해결해야지. 21세기는 민주주의 시대 아니겠어?”

우문현답(愚問賢答)을 소개한다. 
"현명한 자는 보는 걸 믿고, 겁쟁이는 믿는 걸 본다."
이 역시 스탈린이 남긴 말이다. 잔인했던 그이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통찰력은 배울 만하다.

통계 수치 뒤에 숨어있는 한 사람. 이 한 사람이 보이면, 보이는 그대로 믿는 현자가 되어라.
겁쟁이는 보이는 대로 믿지 않는다. 저 멀리 환상의 유토피아를 보려한다.
겁쟁이에게 숫자는 그저 숫자일 뿐이다.

숫자 뒤의 한 사람, 그 한 사람이 내 민족, 내 동포다.
민족과 동포를 넘어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할 최소한의 기본권, 존엄성.
북한 정권은 인간을, 그것도 자기 나라의 국민들을 짓밟다 못해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놀랍다. 이를 옹호하는 세력들이 대한민국에 득실득실하다니.

20대 총선이 10일도 남지 않았다.
나에게 20대 총선은 선거권을 행사하는 두 번째 총선이다.
부끄럽다. 편협한 시선으로 정치를 바라봤던 지난날들.
내 동네 발전만 생각하고 한 표를 행사한 수준 낮은 유권자였다.

집에 오니 선거공보가 와있다. 
이번에는 잘 뽑아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책자들을 넘겼다.
후보자들이 다 거기서 거기 같다. 누가 적합한지 도통 감이 안 잡힌다. 
일단 내 지역, 내 동네로 향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찾아봤다. 공약 말고, 이들의 생각이 진정 어떠한지.
북한의 처절한 현실을 직시하는 자들인지, 
아직도 북한에 환상을 품고 있는 자들인지.

통일(統一)을 앞둔 시대. 통일 준비는 다른 게 아니다. 
북한 주민들의 절규를 외면하지 않는 것. 
더 이상 ‘아무나의 일’로 치부하지 않는 것. 
‘우리의 일’로 바꾸는 것. 이것부터 시작이다.
그 출발선이 이번 20대 총선이다.

나는 소망한다.
이번 총선에서 현실을 보고, 현실을 바꾸는 현자(賢者)들이 나오기를.
어둠에 갇힌 북한 주민들에게 한 줄기 빛이 도달하기를.
그래서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할 자유, 평등, 인권을 누리기를.

 

                                                                 

[칼럼링크]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07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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