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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영화 “태양 아래”, 북한판 트루먼 쇼 <젊은이 발언>
거대넷 조회수:4133
2016-05-13 01:09:00

우리는 오늘도 동족들을 위해 비상구(EXIT) 버튼을 누른다

영화 “태양 아래”, 북한판 트루먼 쇼 <젊은이 발언>

 

영화 “태양 아래”, 북한판 트루먼 쇼


김기업 (1993년생)
단국대학교 사학과 3학년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회원
(사) 대한민국 건국회 청년단 회원

 

 

 

1998년 개봉된 “트루먼 쇼”에 전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 영화에는 트루먼 버뱅크라는 평범한 샐러리맨이 나온다.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그는 하루 24시간 생방송 되는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다. 
그가 사는 세상은 거대한 세트장이고, 그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역할을 맡은 배우다. 
전 세계의 시청자들은 그의 탄생부터 30세까지의 일거수일투족을 TV를 통해 지켜본다.

최근 북한판 트루먼 쇼인 영화 “태양 아래”가 개봉되었다.
이 나라에는 지구상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산다. 
몇 세대에 걸쳐 그들의 삶의 신조(信條)는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이다.
하지만 외부인에게는 이 지상낙원을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트루먼 쇼의 시청자가 전 세계 사람들이었다면, “태양 아래”의 시청자는 태양, 곧 김일성이었다.

영화에는 8살 소녀 ‘진미’가 등장한다. 
진미는 제작진 앞에서 체제의 일부였고, 그 체제는 이 영화의 공동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체제를 만든 주인공이 김일성이다. 
즉, 연출 ‘김일성’, 작가 ‘김일성 체제’에 의해 거대한 세트장 평양에서 만들어진 트루먼 쇼였다. 
그러나 이 영화가 허구 내용의 트루먼 쇼보다 더 주목할 점은 실화(實話)라는 것이다.

사실 북한의 거대한 세트장은 평양에서 끝나지 않는다. 
세트장의 아주 깊숙하고 가장 어두운 곳에서는 ‘수용소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사상과 기술의 주인은 우리라
사대주의 수정주의 짓부셔버리자
사상 기술 문화 혁명 더욱 다그쳐
혁명의 주인답게 혁명의 주인답게 
살아나가자…… 
(북한 수용소에서만 불리는 일명 ‘혁명화의 노래’)

김일성 체제의 시작은 분명 공산주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끝은 수용소였다.

영화 트루먼 쇼의 트루먼은 탈출을 위해 발버둥 쳐 결국 세트장 끝에 달한다.  
그곳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그려진 세트벽이었다. 
벽에는 비상구(EXIT)버튼이 있었고, 트루먼은 그 버튼을 누르고 세상 밖으로 나간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고 발악을 해도 그 끝은 수용소이다.
그곳에 수용된 사람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 개미만도 못한 목숨으로 여겨지며 온갖 노동과 사상교육에 시달린다. 
결국 그들은 가족을 잃고 짐승이 되어버린다.

 

▲ 북한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나선 청년들.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의 북한 인권 사진전이 4월 4일 성신여대에서 열렸다.
 

북한에 대한 여러 책에서 교화소, 혁명화구역, 완전통제구역, 
그 외에도 구류장, 집결소, 노동단결대 등 정말 다양한 인권 유린의 실상을 읽게 된다.
처음에는 끔찍하다는 생각과 함께 화가 났다. 
그러나 문자로 마주하는 실상들에, 마침내는 가슴이 먹먹할 뿐 무감각해진다. 
마치 트루먼 쇼의 시청자들이 트루먼의 목숨 건 탈출과정을 ‘찻잔 속 태풍’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여기는 것과 비슷하다.

트루먼 쇼의 연출자 이름 크리스토프(Christof)는 자연스레 예수(Christ)를 연상하게 만든다. 
크리스토프는 독단에 빠진 오만한 지도자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 신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만행을 상징한다. 
크리스토프에서 예수를 연상하였다면, 
트루먼이라는 이름은 ‘진실한(true)’이라는 단어와 연결된다. 
영화 속 트루먼은 진실을 깨닫고 진실한 삶을 향해 도전하는 인물이다.

트루먼, 그가 마주할 진실은 어쩌면 악몽(惡夢)일지 모른다. 
지금까지의 그의 모든 것이 다 가짜였다. 
앞으로 살아갈 삶마저도 정체성의 혼란과 함께 괴로움의 연속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악몽을 직면하는 것. 
그것이 트루먼으로서는 비상구(EXIT) 버튼을 누르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김일성이라는 인간이 신의 이름으로 저지른 만행. 
그 악몽 같은 북한의 기록들을 직면하는 것이 북한을 이해하는 것이다. 
내 부모 형제, 내 사랑하는 이의 이야기를 상상으로나마 피부에 와 닿게 하는 작업. 
그때에야 비로소 “찻잔 속 태풍”이 내 상황이 된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함께 발버둥 쳐야한다.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로 함께 하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대신 입이 되어주는 일. 
홀로 죽어가는 그들을 위해 함께 아파하며 눈물 흘리는 일. 
북한의 진실을 밝히고 인권을 말하는 것은 북한을 위해 비상구(EXIT) 버튼을 누르는 일이다.

필자가 소속된 단체는 매년 여러 대학에서 
북한인권사진전을 열고 있다. 
혹자는 이에 대해 “정치적 편향성”을 운운한다. 
탈북민 구출을 위해 모금을 하면 “대학생들의 돈을 뜯어낸다.”는 악소문을 퍼뜨린다. 
그러나 북한 인권을 알리는 일에는 어떠한 다른 가치도 개입될 수 없다.
오직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동족들을 위해 비상구(EXIT) 버튼을 누른다. 

 

기사원문: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6/05/12/20160512000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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