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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즈돌리노예 역 ⓒ 블루투데이 |
1937년 스탈린은 연해주 고려인의 강제이주정책을 시작한다. 당시 소련과 일본은 만주를 두고 전운이 감돌았다. 정책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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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즈돌리노예 역과 철길 파노라마 ⓒ 블루투데이 |
하나는 일본 첩자가 되기 적합한 고려인들의 동양 외모가 두려웠던 까닭이다. 또한, 고려인들이 너무 성실했던 탓이다. 사회주의 본국의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해선, 고려인들의 뛰어난 노동력은 스탈린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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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즈돌리노예 역전 단체기념사진 ⓒ 블루투데이 |
그로 인해 연해주에서 6,000km나 떨어진 곳이다. 예조프가 스탈린에게 제출한 최종보고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에 95,256명, 우주베키스탄에 76,525명이 강제이주 당했다.
그 강제이주 비극의 시작점이 바로 이곳 “나제돌리나 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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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보스톡 하바로프스카야 거리 표지판. ⓒ 블루투데이 |
뿐만 아니라 블라디보스톡의 ‘하바로브스카야’에서도 강제이주는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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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보스톡 하바로프스카야 거리 신한촌 기념비. ⓒ 블루투데이 |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 집단 거주지인 신한촌을 기념하여 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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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보스톡 하바로프스카야 거리 신한촌 기념비. ⓒ 블루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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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보스톡 하바로프스카야 거리 신한촌 기념비. ⓒ 블루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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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한촌 기념비 앞에 헌화식을 진행하고 있다. ⓒ 블루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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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한촌 기념비 방명록 ⓒ 블루투데이 |
이번 여정의 단장을 맡은 역사정립연구소 조형곤 소장은 신한촌 기념비 방명록의 펜을 들었다. “고려인 강제이주의 기막힌 슬픔! 이제 번영된 조국이 40만 고려인의 아픔을 달래고 끌어안아야 합니다. 재외동포가 아니라 그들은 우리 국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