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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진실이 파괴될 때까지 진실을 외쳐라
거대넷 조회수:3636
2018-05-03 14:39:00

진실이 파괴될 때까지 진실을 외쳐라

 

 
한슬기 칼럼 | 최종편집 2018.04.05 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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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 발언]

   한 슬기(1989년생)

   광주대학교 청소년상담평생교육학과 졸업

   <청년의 책장> 대표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간사

   (사) 대한민국 건국회 청년단 회원

 


文대통령의 제70주년 4.3 추념사는 “진실(眞實)”했다.

14분 17초(857초)동안, 진실이란 단어를 9번이나 사용했다. 비슷한 의미를 가진,

사실(寫實)2번, 직시(直視)4번, 진상(眞相)4번까지 포함하면 19번이다. 45초당 1번꼴이다.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 속, 마치 대통령은 진실의 수호자(守護者)인 듯했다.

“아직도 4.3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3.15 부정선거 규탄과 함께 4.3의 진실을 외쳤습니다.”

“5.16 군부세력에 의해 꺾였지만, 진실을 알리려는 용기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실이 외면됨을 안타까워하므로, 진실을 외쳤고, 진실의 용기를 치하했다. 

내용 역시 진실하여, “계엄령 선포, 초토화 작전, 폭도의 가족,”등을 힘주어 말했다. 

45초마다 진실을 설파하는, 진실한 대통령 가르침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진실, 사실, 직시, 진상’을 아무리 부르짖어도, 

사라지지 않는 그 날의 ‘기록(記錄)’이 있다. 기록은 진실하다.

하나. 
“당시, 남로당 제주위원회의 당원 수는 3,000명이었다.”

     『4.3사건 진상 규명과 희생자 및 명예회복위원회』, 94쪽
 

당원 수가 3,000명이니, 당시 제주 인구의 1퍼센트다. 1퍼센트는 작지만 강력했다.

1947년 3.1절 기념행사로 제주 읍 관덕정 광장에 3만 명 이상의 사람을 모으는가 하면,

1948년 5.10 총선 북제주 갑과 을에서는 투표자를 위협하여, 선거를 무효화시킨다.

남로당 유격대가 된 이들은, 정부의 토벌대와 맞서 3만 명 사상자비극의 원인이 된다.

그런데, 선량한 섬사람 제주 인이 3,000명이나 당에 가입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주의에 경도(傾倒)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고자 한다.

해방 전 태평양 전쟁 시, 일제는 제주민심을 얻고자 미국을 ‘귀축(鬼畜)’이라 악담했다.

더욱이 흉년이 들어, 식량난이 극심해진다. 전염병 ‘호열자’마저 섬을 휩쓴다. 

현실은 고달팠고, 이상은 달콤했다. 
불행한 현실에, 사람들은 ‘사회주의 로망’에서 행복하고자 했다. 
제주의 좌익 단체들은 스탈린, 김일성, 박헌영을 명예의장으로 추대했다. 

전염병 호열자가 휩쓴 제주도에, 소비에트 정신병 호열자가 섬을 어지럽히기 시작한다. 

  

둘. 
“남로당 유격대장 이덕구가 소지하고 있던 『제주도 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 73~74쪽” 

 (1) 경찰에 대한 전과 사항 :

    지서 습격 31회, 지서 건물 파괴 3동(棟), 지서 소각 6동, 경찰관 살해 74명, 

    부상 35명, 경찰관 가족 살해 7명, 투항 경찰관 4명 등.

 (2) 관공서 습격 및 우익 인사 숙청 상황 : 

    관공서 습격 2회, 관공서 소각과 파괴 각각 1개소, 반동 살해 223명, 부상 28명, 

    반동가족 살해 12명, 반동 가옥 소각 120채, 파괴 7채, 경찰관 가옥 소각 2채, 

    반동 포로 20명, 그 가족 포로 2명 등.

 (3) 공공 재산 파괴 및 기타 무기 노획 상황 :

    전선 절단(전봇대 절단)940개, 도로 파괴 170곳, 교량 파괴 3곳, 기타 무기노획. 

집의 형상은 아스라이 재만 남아, 화기(火氣)로써 우릴 반겼다. 

경찰과 우익인사를 찌르고 나온 유격대의 죽창은, 반동분자의 가족들을 도륙했다. 

시체더미가 된 가족은, 재회(再會)함을 기뻐하지도, 슬퍼할 수도 없었다.

인민유격대는 악(惡)했다. 위의 내용을 상세히 기록할 만큼, 철두철미(徹頭徹尾)했다. 

결코 약(弱)하지도 않으므로, 악으로 견고했다.

3,000명의 숫자와 투쟁문서의 진실은, 사람으로도 증거 된다.

셋. “비극적 역사의 증인들 : 오창기, 김태생, 김달삼.”
 

 「좌와 우의 극렬한 대립이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낳았지만 4·3 희생자들과 제주도민들은 이념이 만든 불신과 증오를 뛰어 넘어섰습니다. 고 오창기 님은 4.3 당시 군경에게 총상을 입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3기’로 자원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습니다. 아내와 부모, 장모와 처제를 모두 잃었던 고 김태생 님은 애국의 혈서를 쓰고 군대에 지원했습니다.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습니다.」 

-文대통령, 4.3추념사 중

 

좌와 우의 극렬한 대립은 비극적 역사를 낳는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청년들은 실체(實體)로써, 진실을 깨닫는다.

4.3의 남로당원 오창기는, 6.25의 해병대가 된다.

정부의 총부리에 가족을 잃은 김태생 청년은, 애국의 혈서를 쓰고 군대에 지원한다.

알아버린 자는 가만있지 못한다. 남로당의 실체를 미리 안(1947년), 제주 청춘들은 행동했다. 

6.25로 전 국토가 남로당화 될 뻔한 위기, 그들은 조국을 위해 산화(散華)했다.

실체 앞에서도, 진실을 깨닫지 못하는 눈먼 자도 있다.

4.3사건 남로당 총책임자이자, 총사령관으로 유격대를 이끈 ‘김달삼’이다. 

그는 악(惡)을 저지르고, 저지른 악을 자랑하려 방북한다. 
1948년 8월. 황해주 해주에 인민대표자대회에서 ‘제주 4.3투쟁에 관해’ 보고한다.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위원회 헌법위원까지 오른다. 
6.25에는 유격대원 500명으로 구성된 549부대를 이끌고 남하한다. 
토벌대에게 북쪽으로 밀리다, 강원도에서 사살 당한다. 

진실에, 진실이 가려진다.

제주도 남로당원 3,000명을 가려야, 4.3은 선량한 시민의 저항이 된다.

남로당 유격대의 견고한 악을 부정해야, 국군은 잔인한 학살자가 된다.

이념의 증인들이 사라져야, 이념은 무기로써 빛을 발한다. 

그래야만, 이념의 이름으로 양민을 죽인 국군은 주적(主敵)이 된다.

문제의 원흉인, 이념을 과거 속으로 보내줘야, ‘낡은 이념’이 출현한다.

낡은 이념이 탄생시킨 ‘~주의’를 가려야, 

자유민주주의를 천대하고, 공산주의 악(惡)을 외면할 수 있다. 

개인의 존엄을 보장되는 이타적인 대한민국을 증오할 수 있고,

김씨(金氏)일가의 자유만 보장되는 이기적인 북한을 증오하지 않을 수 있다. 

뒤바뀐 선악(善惡)으로, 선한 것을 악하다, 악한 것을 선하다 말할 수 있게 된다.

진실을 외치며 진실을 부수려는 자들은 오늘도 목 놓아 외친다.

진실이 가리 울 때까지 진실을 외쳐라, 

진실이 사라질 때까지 진실을 선포하라,

진실이 파괴될 때까지 진실을 부르짖으라.


원문보기: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8/04/05/20180405000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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