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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의보! 나는 평화가 싫다 -[젊은이 발언]
거대넷 조회수:3875
2018-10-09 14:07:00

‘평화’주의보! 나는 평화가 싫다 -[젊은이 발언]

'평화' 떠들기 전에 핵폐기-인권문제부터 완결해야 진짜 평화!


 

 

윤나라(1990년생)
중국 충징시(市) 사천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사람들은 평화를 좋아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사실 ‘예외’라는 단어를 쓰는 것조차 면구스럽다. 
5천년 역사 동안 1천번 침략당한 나라여서 그런지, 유독 ‘평화’라는 단어에 약하다. 
얼마나 약한지, ‘평화 없는 평화’에도 열광한다.

‘평화’는 마약이다. 사람을 현혹시킨다. 
한반도에 또 다시 ‘평화’ 바람이 불고 있다. 

2018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협정이 이루어진다고 나라가 들썩인다. 
소매로 눈시울을 훔치는 이도 여럿이다. 그야말로 ‘평화’라는 단어에 담긴 마력(魔力)에 취해 
분별력을 잃은 꼴이다. 진정한 희극이다.

‘평화’는 면죄부(免罪符)다. 
고작해야 단어 하나가 누군가의 죄를 덮는 장막이자 성공행(行) 티켓이 된다. 
그 ‘수혜자’는 언제나 죄질이 무거운 범국가적(汎國家的) ‘평화주의자들’이다. 
그들이 입은 수혜(受惠)가 클수록 나라의 피해는 커져만 갔기에,
‘평화’는 대체로 더 큰 아픔만을 남겼다.

일찍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평화가 들꽃처럼 만발하며, 희망과 소망이 무지개처럼 꽃피는 시대를 
열겠다”고 외친 이가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김대중 대통령이다. 
국민들은 그를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 위인’이라 말한다. 통탄할 일이다.

김대중은 재임 시절 김정일 정권의 대남(對南) 공작 및 국제범죄 계좌로 4억 5000만 달러를 송금한 전력(前歷)이 있다. 그것도 국가안보의 핵심인 국정원을 시켜 행한 위법(違法)행위 아닌가. 
실로 국가의 근간을 뒤흔든 행위이다. 국민을 우롱한 국정농단 행각이라 할만하다.

그는 항상 언론을 통해 “박정희 정권이 자신을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암살하려 했으며, 사고 트럭의 운전사는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던 운전사는 멀쩡히 살아있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살인범으로 몰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지 못했다.

김대중은 김정일의 직접 명령에 따라 일본인을 납치했던 신광주를 북송(北送)시켰다. 
한 나라의 수장(首長)이 주적의 수장(김정일)이 저지른 국제범죄의 증거를 앞장서 인멸했다. 
납치범은 살려서 보내줬는데, 납치된 일본인은 생사조차 묻지 않았다. 
김대중의 ‘평화’엔 언제나 ‘인권(人權)’이 없었다.

북한의 개방을 이끌어내겠다고 주장한 ‘햇볕정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따사로운 햇살’은 우리의 또 다른 가족에게 단 한 조각도 닿지 못했다. 
2500만 북한 동포들은 더욱 처참히 대량아사와 인권유린으로 죽어갔다. 
햇볕 정책으로 퍼준 돈은 전 북한 동포들을 무려 33년간 먹여 살릴 수 있는 지원이었다. 
그러나 핵무기를 비롯한 북한의 군사력 강화에 사용되었다. 
김대중의 평화정책으로, 친북세력들은 오히려 무상(無償)으로 이 땅에서 활개치고 다닐 수 있는 발판을 얻어냈다. 그럼에도 그는 ‘평화’를 사랑한 ‘지극한 애국자’이자 ‘통일 염원(念願)자’ 로 남겨졌다.

안타깝게도 역사는 반복된다. 

김대중의 ‘평화’는 오늘날 그 이름을 바꿔 또 다른 형태의 ‘평화’가 되었다.
‘사람이 먼저’라고 주장한 문재인 대통령과, 세계적인 사기꾼이자 자기 고모부를 고사포로 쏴 죽인 ‘연쇄살인마’의 굳게 잡힌 두 손 아래에서, “평화의 시작”이라고 주장한 남북정상회담은 실로 외화내빈(外華內貧),
‘속 빈 강정’이었다. 회담 내내 ‘진정한 통일’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들에 대한 토론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저들이 주장한 ‘평화’가 ‘진정한 평화’라면, 가장 앞서 
1)북한의 핵 폐기와 2)‘인권’문제에 대한 협의가 이루어졌어야 함이 옳다. 
하지만 모두가 알듯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는 구밀복검(口蜜腹劍)에 지나지 않았다. 
북한의 폭파쇼(show)는 또 다시 전 세계를 농락하는 쇼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인권은 어떠한가? 회담 내내 지난 70년간 고통당한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나 북한에 납북(拉北)된 대한민국
국군의 인권에 대한 언급이 일절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까지 대한민국에 납북된 군인의 수는 총 83,000여명. 그 중 단 10%인 8,300명만이 조국으로 돌아왔으며, 현재 150분 만이 생존해 계신다.

하지만 ‘사람이 먼저’라던 대통령은 이번에도 침묵했다.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완전한 해체와 납북된 군인들을 되찾아오도록, 누구보다 앞장서 총대를 메야 할 인물이 그저 허허실실 웃으며 북의 요구를 모조리 수용하는 모양새다. 오히려 탈북한 13명의 류경식당 종업원이 북송(北送)되는 즉시 사형에 처해질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북송 건에 대해서만 논의가 분분하다.


정치나 외교에 무지(無知)한 나조차 ‘육참골단(肉斬骨斷)’을 안다. 
‘작은 것을 내주고 큰 것을 취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평화’를 대하는 자세는 매우 기이하다. 
이렇게 국가의 이익과 안보는 내버린 채 적의 모든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지도자의 자세인가? 
이런 행보가 진정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나는 ‘평화’가 무섭다. 
아니, 이제는 거짓된 평화에 취해 분별력을 잃은 국민들이 무서운지, 
아니면 그렇게 당하고도 또 다시 그들을 거짓 평화에 매달리게 만드는 평화의 ‘마력’이 무서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민족을 내세운 자들이 말하는 ‘평화’는 마치 끊임없이 이어지는 ‘도돌이표’ 같다. 
시대를 이어서 끊임없이 반복된다. 나는 정말 ‘평화’가 싫다.


원문보기: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8/06/02/20180602000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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