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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에서 온 소설 《고발》감상문 공모’ 가작 수상작] 행복의 강요에 맞서 노래한 비극(悲劇) - 김창대
거대넷 조회수:7515
2016-02-13 16:30:00

행복의 강요에 맞서 노래한 비극(悲劇)

 

 

 

김창대 (1995년생)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 재학 중

거룩한대한민국네트워크 회원
(사) 대한민국 건국회 청년단 회원

 

 

<고발>, 작가보다 자유를 먼저 맛본 작품.

수많은 고초를 겪으며 자유의 대지에 도착한 <고발>. 원고(原稿)는 발을 땅에 내딛자마자 고래고래 비극의 통곡을 쏟아 놓았다.

자유를 맛본 감격에 취해 흥겨운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도 있건만, 외침의 시작과 끝은 온통 비극과 고통, 분노로 물들어 있었다.

 

<저 유럽의

옛 털보는 주장하기를

자본주의는 암흑천지요

공산주의는 광명천지라 하였거늘

 

암흑천지에서만 빛날 운명인

광명천지의 나 반디는

만 천하에 고발하노라

그 암흑이 그믐밤이라면

천만길 먹물속인

털보의 그 광명천지를>

 

고발의 머리글이다. 머리글부터 마지막 장까지. 기쁨은 찾기 힘들어 보인다.

자유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한 도박에서 승리했지만, 승자의 기쁨은 찾아볼 수 없다. 자유를 얻은 기쁨을 꺾을 만큼 무엇이 그토록 한탄스러웠을까. 무엇이 그토록 서러워 기쁨을 삼킨 입에서 비극을 토해냈을까.

 

작품 속 비극을 관통하는 한 가지 소재가 있다. 인간의 가장 큰 슬픔,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작품에선 꼭 누군가가 죽거나 죽음을 가까이 한다.

 

적대군중(당에서 역적으로 보는 계급의 계층에 속하는 사람)의 쇠도장 때문에 어머니의 뱃속이 무덤이 된 아이.

‘어비’의 정체를 깨닫게 된, 평양에서 추방당한 한경희.

느티나무와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처럼 나무에 달린 훈장을 요절내고 심장마비로 급사(急死)한 설용수.

법보다 무서운 질서 때문에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김명철.

대합실에서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른 영감과 손녀. 그들을 병간호 하는 공산당의 선전선동 소재 오씨.

무대의 실체를 알게 되자 그 누구보다 연극무대의 막을 빨리 내린 홍영표.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직무태만이라는 이름으로 공개처형을 당한 고인식.

 

낙태부터 총살까지. 남한에서의 죽음은 굉장히 낯선 광경이지만, 반디가 그린 북한에서의 죽음은 다채롭고 익숙하기까지 하다.

 

‘죽음’이란 소재가 인간의 가장 큰 슬픔을 의미하기에 쉽게 쓰이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고발>에선 죽음만큼 쉽게 쓰인 소재가 없었다. 죽음을 즐겨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슬픔을 가장 많이 사용했기에, <고발>에 나오는 '죽음'의 의미(意味)는 더욱 심장(深長)해진다.

현세의 슬픔을 이기기 위해 현세를 마감해야 하는 나라. 인간의 가장 큰 슬픔인 죽음만이 현세의 고통에서 자유케 할 수 있는 나라.

 

죽음을 통해 비극을 노래했기에, 얼핏 보면 반디의 작품은 기쁨과 거리가 멀어 보이고, 자유와 어떤 관계도 맺고 있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발>만큼 자유와 관계 맺은 소설이 없고, <고발>만큼 기쁨을 노래하는 비극이 없음을 알 게 된다.

 

알고 보니 작품 속 비극의 향연(饗宴)은 진정한 기쁨의 노래였다.

자유가 주는 큰 기쁨 중 하나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일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해야만 하는 억압. 그로부터의 자유, 해방.

반디가 살았던 ‘슬픔을 허용하지 않는 땅’은 비극도 허용하지 않았다. 복마전(伏魔殿)이야기처럼 슬퍼도 웃어야 하는 땅이기에, 비극적인 문학은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다. 북녘에 태어난 스스로가 너무나도 불쌍한데, 행복한 척 웃어야 하는 문학가들. 그들의 직업은 인민의 입을 대변하기에, 빨간 마귀의 가장 강력한 마법에 묶였을 것이다.

 

그러나 반디는 마법에 맞서 실상(實狀)으로 대답했다. 행복의 강요에 맞서 비극을 노래했다. 행복해야만 한다는 거대한 억압에 당당히 맞서 그의 단편소설 <고발>로 통곡했다. 자신의 나라를 유토피아로 만들기 위해 국민의 집을 칼날 위에 짓게 하고, 인민을 감시의 단두대에 누워 생활하게 하는 북한 정권에 대항하여 펜으로 응수(凝水)했다. 반디는 단편소설마다 비극적인 죽음을 통해 웃음이 넘치는 유토피아의 실상을 고발했다.

 

인간으로서 억압에 당당히 맞설 자유, 비상식적인 시스템과 부조리를 고발할 수 있는 자유. 반디의 억눌렀던 인간성을 해방시킨 자유. 마법에서 해방된 반디이기에, 그의 책 <고발>이 토하고 있는 비극의 통곡은 비극의 슬픔만을 담고 있지 않다. 원고를 써가며 흘렸을 반디의 눈물엔 기쁨의 눈물이 섞여있었다. 자유를 누린 기쁨의 눈물.

반디는 분명 자유를 누렸다. 자유를 누린 작가는 그의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그가 흘렸던 기쁨의 눈물을 잉크에 담았을 것이다.

 

이것이 책 <고발>의 비극 속에 기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 반디의 작품이 자유의 토양에서 영양분을 흡수하며 알차게 맺은 열매라 느껴질 만큼, <고발>은 자유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 주인공은 교도소에서 탈옥한다. 폭우가 내리고 천둥이 치는 비극적인 날씨지만, 주인공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반디의 <고발> 또한 비극적인 환경 속에서 표현의 기쁨을 맞이한 아이러니 아닐까.

 

아직 설익었지만, 자유주의 진영에 있는 나에게 반디가 노래한 자유의 기쁨은, 그 어느 노래보다 강력하고 그 어느 소설보다 뚜렷하게 다가왔다. 죽음을 통해 노래하는 자유. 원색적인 반디의 기쁨은 기쁘면서도 슬프다. 억압에 땅에서 위대한 자유의 목소리가 외쳐져 기쁘지만, 죽음을 소재로 노래할 수밖에 없음에 흘리는 눈물. 너무도 하드코어(hardcore)한 반디의 자유가 부드러워 졌으면 하는 안타까운 바람이 든다.

 

북녘의 땅이 극단적이기에, 자유도 극단적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하루 빨리 부드럽고도 따뜻한 자유의 바람이 북녘에 흘러 들어가길 바라는 작은 소망을 품는다. 반디의 책 <고발>을 덮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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