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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에서 온 소설 《고발》감상문 공모’ 가작 수상작] 죽어야만 내려올 수 있는 '연극무대'-배예랑
거대넷 조회수:7038
2016-02-13 16:39:00

죽어야만 내려올 수 있는 '연극무대'

 

배예랑(1991년생)
백석대학교 영어학과 졸
거룩한대한민국네트워크 간사
(사) 대한민국 건국회 청년단 회원

 

차가운 겨울을 담고 있는 책 표지와 어딘지 모르게 뜨거움을 내비치는 주홍빛의 ‘고발’이란 단어가 내 심장을 움켜잡는다.
피눈물에 뼈로 적은 글이라 했던가. 그리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반디의 심정을 작게나마 느껴본다.
목숨을 걸지 않고 쓸 수는 없었으며, 목숨을 담보로 보낼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야속하기만 하다.

1991년, 1993년. 나와 내 동생이 태어난 해이다. 
우리는 태어나주어 고맙다는 말. 건강하게만 자라달라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며 축복 가운데 컸다.
그리고 우리는 배웠다. 모든 사람은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 존귀하다. 인간은 자유와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북한은 달랐다. 모두가 존엄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태어나주어 고맙다는, 자유롭게 행복을 누려달라는, 그저 사랑한다는 축복은 오로지 위대하고 존귀한, 김일성 장군님을 위할 뿐이었다.

 

 
▲ 1997년 10월, MBC 뉴스에 보도된 고난의 행군의 참상 

 

고난의 행군. 허기짐이 굶주림으로 바뀐다.
옆집에서 사람이 죽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옆에 앉아 있던 동생이 죽는다.
굶어 죽는 것이 다행일까. 서로 물고 뜯는 감시와 비판 가운데, 억울하게 죄 같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쓰고 죽는 것보단 나으리… 싶다가도, 어찌 죽음이 괜찮을 리가. 배고픔에 의한 죽음도,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죽는 죽음도,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죽음, 개죽음이다.

반디는 주인공들을 통해 감출 수밖에 없었던 눈물을 조심스레 드러낸다.
<탈북기>의 주인공 리일철은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로 살아간다. 아버지가 수령님의 랭상모를 죽였다는 이유다. 그로인해 집안 대대로 겪어야 했던 수모는 탈출을 ‘결심’하기에 충분했다. 이곳에서 출신성분은 한 개인의 인생을, 한 집안의 내력을 바꿀 만한 요소였다.

그렇다고 출신성분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유령의 도시>의 주인공 한경희는 리일철과 같이 ‘아버지 때문에’ 좋은 출신성분이라 당당했다. 그러나 창문에 커튼을 쳤다는 이유로, 김일성의 초상을 솥뚜껑에 비유했다는 이유로, 잡혀간다. 우리 같으면 그런 상황에서 울고 억울하다 화를 내며 당장 이 심정을 SNS에 올리려 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마지막에 이렇게 다짐한다.

“이제라도 또 ‘어비’의 영이 내려지면 45분이 아니라 그보다 더 빠른 시간에라도 무조건 광장으로 모둠질쳐 대령을 해야 하리라고!”

이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출신성분에 따라 한 개인의 인생을 낙인찍는다. 그렇다고, 꼭 출신성분을 따라 인생이 좌지우지 되는 것도 아니다. 북한 주민 개인의 인생은 오직 ‘자애로운 어버이 수령’에게 달렸다. 모든 사건을 통해 또 다시 충성을 다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북한이다.

자애로운 어버이 수령이라니! 그에겐 ‘자애’라는 표현보단 ‘잔인’이란 표현이 어울린다.
얼핏 북한 선전용 포스터가 떠오른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세상에 부럼 없어라!”
고된 노동에 피곤함과 배고픔이 절정에 달할지라도, 그들을 웃게 한다.
올망졸망한 어린 아이들은 같은 표정, 같은 몸짓을 하고 수령님 사진을 바라본다.
나는 이러한 장면을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다. 화가 난다.

 


▲ 김일성 동상 앞에서 절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

 

나에게 가장 묵직하게 다가온 한 작품은 <무대>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의 씨름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체제와 反체제의 싸움이었으며, 진실과 거짓의 싸움이었다.

청년인 아들 경훈은 알아버렸다. 아파도 아프지 않다 해야 하며 배고픔도 배고프지 않다 말해야 하는 곳.
사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경훈의 <아프다 하하하> <간지럽다 엉엉>을 보고 눈물 나게 웃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 저 조의장에선 벌써 석 달이나 배급을 못타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꽃을 꺾으려고 헤매다 독사에게 물려 죽은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 그들의 눈물이 진실이란 말입니까?”

경훈이 말하는 ‘진실’이다. 진실은 그의 아버지 귀에 맴돌다 마음에 꽂혔다. 나에게도 강하게 내리 꽂힌다.
그들의 감정대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고 말 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가.
그들은 김일성 앞도 아닌 김일성 동상 앞에서 그렇게 울어야 했다.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살아남기 위해서.

작가 반디는 경훈의 입을 통해서 마침내 자신의 속마음을 쏟아 냈다.
자신이 바라보는 진실과 자유를 외쳤다.

“진실한 생활이란 자유로운 곳에만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억압, 통제하는 곳일수록 연극이 많아지기 마련이구요. 얼마나 처참해요. 백성들을 이렇게 지어낸 눈물까지 흘릴 줄 아는 명배우들로 만들어 버린 이 현실이 무섭지도 않은가 말입니다.”

무섭다. 이 현실이 무섭고, 이 현실이 그리 멀지 않은 우리 북녘 땅 가운데 일어난다는 것이 무섭다.
철저히 통제되기에 거짓과 가식이 난무한다. 그것을 반디는 ‘무대’라 칭했다. 삶도 죽음도 모든 게 ‘무대’에서 벌어진다.
그들에게 있어서 무대 탈출은, 인간답게 살고자하는 그들의 욕망은, 죽음을 뜻한다.

내가 청소년 시절에 했던 고민들, 20대가 되어서 하는 고민들, 인생의 위기라고 느껴졌던 그 순간마저 감사하게 된다.
나는 그래도 나의 인생을 고민해 볼 수 있었으며, 나를 위해 울 수 있었고 웃을 수도 있었다.
가벼웠던 자유가 무겁게 내 마음을 누른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통일을 직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통일을 외친다. 누구는 국가적 이익이 어마어마함을 강조하며 통일은 대박이라 말한다. 또 누구는 한민족이기에 우리는 통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도 통일을 외치고 싶다. 그러나 그 전에 나는 자유를 외치는 사람이고 싶다. 나는 자유를 위해 통일을 이루고 싶노라고. 내가 누리는 이 자유, 그들도 마땅히 누려야겠노라고. 나에게 당연했던 축복, 그들도 당연히 받아야겠노라고. 통일은 인간 존엄성의 회복이다.

날이 많이 추워졌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 위에 사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 애꿎은 하늘만 쳐다본다. 저 멀리 태극기가 펄럭인다. 그 아래 사람들은 추위에 몸을 잔뜩 웅크렸다.  냉정한 바람이 괜히 서럽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심장마저 얼려버릴 기세로 달려든다. 그러나 심장은 ‘나는, 살겠노라!’를 외치며 더 뜨겁게 뛰는 듯하다.

차가운 김일성 동상 아래 반디의 뜨거운 호흡이 느껴진다.
암흑천지의 북한에서 이내 남한에 흘러들어온 반디의 희미한 빛이 더욱 반짝인다.
‘나는, 꺼지지 않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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