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미디어&영상 활동상황

활동상황

아카데미 학생들은 책을 읽으며 글을 배웁니다. 학생들과 대표님이 대외적으로 쓴 글들을 모아놓았습니다.

게시글 검색
[‘北에서 온 소설 《고발》감상문 공모’ 우수상 수상작] 김일성의 거짓 낙원을 찬양하는, 철없는 남한 사람들을 향한 고발 - 강유화
거대넷 조회수:8957
2016-02-13 17:31:00

김일성의 거짓 낙원을 찬양하는, 철없는 남한 사람들을 향한 고발

 

강유화 (1991년생)
충남대학교 언론 정보학과 졸업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회원
(사) 건국회 청년단 회원
 

김일성의 ‘낙원’과 반디의 ‘실낙원’

김일성의 북한이 낙원이라면 반디의 북한은 실낙원이었다. 반디가 ‘피눈물에 뼈로 적었다’는 소설 《고발》은 북한 주민들의 애달픈 실낙원을 그린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도 책을 놓지 못했다. 반디는 북한의 동서남북 모든 땅이 김일성과 그의 새끼 돼지들만을 위한 거대한 낙원임을 보여주었다. 특히 단편 <복마전>은 김일성의 낙원과 북한 주민의 실낙원 사이의 간극을 분명하게 그린다.

<복마전>의 주인공은 오 씨 할머니다. 오 씨 할머니 내외는 딸을 보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차를 갈아타던 중 ‘1호 행사’를 듣게 된다. ‘1호 행사’란 김일성, 김정일 현재는 김정은이 직접 참가하는 행사를 말한다. 행사가 진행되는 곳은 천재지변이 일어난다 해도 오직 김씨 일가만 이용할 수 있다.

 예고 없이 찾아온 ‘1호 행사’로 오 씨 내외와 많은 사람들이 역 대합실에 갇히게 된다. 봉쇄 32시간, 남아 있던 식량은 바닥을 보였다. 늘그막에 찾아온 배고픔은 오 씨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 해산을 앞둔 딸의 수고를 덜어주고자 데려온 손녀가 옆에 있었다. 오로지 손녀가 배를 곯을까 걱정이었다. 결국 오 씨 할머니는 자신의 입이라도 덜고자 길을 떠난다. 곧 해산할 딸을 위해 이웃집에 부탁해 둔 멧돼지 열(쓸개)을 받으러 가기 위해서다. 마침 이웃집이 역에서 멀지 않았다.

길 떠난 오 씨가 도로에 나서자마자 알게 된 것은 ‘1호 행사’가 두 군데에나 내려졌다는 사실이었다. 분명 기찻길에 내린 1호 행사로 자신들이 감금되어 갖은 생고생을 한 것인데 도로에 내린 1호 행사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는 ‘김일성이 둘이라도 된 단 말인가’ 라는 푸념을 한다. 그러던 중 그녀 앞으로 김일성의 승용차가 나타난다. 그토록 들키면 안 된다고 했는데. 잔뜩 겁을 먹어 사시나무 떨 듯 하던 그녀에게 김일성은 선뜻 오 씨를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한다. 아름다운 경치에 기분이 좋았던 것일까. 차에 탄 오 씨 옆으로 기차가 지나간다. 1호 행사가 끝난 것이다. 하지만 기뻐할 세도 없이 그녀는 경악할 만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이틀이 지나도록 대합실에 갇힌 인민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던 이유.

<오 씨는 이제 와서야 철길에 내려진 ‘1호 행사’는 뭐고 도로에 내려진 ‘1호 행사’는 뭔지를 똑똑히 깨달을 수가 있었다. 알고 보니 김일성은 지금 철길도 도로도 동시에 이용하며 이 길을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철길 쪽이 좋을 때는 열차를 타고, 해안 경치가 아름다운 이런 데서는 승용차를 이용하면서….>


▲ 65주년 열병식 행사. 북한 주민들이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오직 김일성의 여행길을 위한 희생이었단 말인가? 오 씨의 머릿속엔 김일성을 원망할 시간도 없이 1호 행사가 끝나고 대합실에서 일어날 일들이 떠오른다. 서로 먼저 대합실을 나가겠다며 문이며 창틈이며 할 것 없이 몰려드는 사람들, 아비규환의 대합실. 인파속에 밀려 엎어지고 밟히는 머리가 허연 영감과 토끼 같은 손녀. 김일성이 보고 즐긴 북한 전역(全域)이 그녀에겐 복마전이었다.

오 씨의 상상대로 전쟁터 같은 대합실에서 영감은 허리가 휘고 손녀는 제비 다리 부러지듯 가냘픈 다리가 꺾였다. 그 시간 자신은 편하게 차를 타고 있었단 사실로 자책에 빠진 할머니를 기다리는 것은 김일성의 마술이었다. 기자들의 성화로 자신의 편의를 봐준 김일성을 치켜세우는 말 몇 마디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오 씨의 목소리는 김일성의 낙원을 선전하는 도구로 이용당한다. 그녀의 찢긴 가슴 사이로 자신의 목소리가 박힌다.

<”이렇게 어버이 수령님께서는 저를 끝내 승용차에 태워주시고서야 길을 떠나셨습니다.” (중략) 드디어 오 씨의 목소리는 끝났다. 그러자 이번엔 열기 띤 방송원의 목소리가 영감, 손녀의 상처 앞에 새로운 칼을 빼들고 나섰다.
“듣고 있습니까, 청취자 여러분! 우리 수령님, 우리 사회주의 제도에 대한 다함없는 이 감사의 목소리를! 정녕 어버이 수령님의 이런 사랑의 품이 있어 이 땅 하늘과 바다 그 어디에나 우리 인민이 불편을 모르는 행복의 여행길 활짝 열려 있고, 그 여행길 위해 오춘화 노인 같은 행복의 웃음소리 높이높이 울려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김일성이 말한 낙원에서 나오는 웃음소리는 그저 사악한 마술이었노라고 고발한다. 무시무시한 동산, 사람의 감정도 순식간에 바꾸어 버리는 마술의 동산. 슬픔을 기쁨으로 아픔을 행복으로 바꾸어 버리는 마술. 김일성의 낙원은 감정을 상실한 북한 주민들의 실낙원이었다.

<그러니 글쎄 생각 좀 해보시우. 그 동산 사람들의 입에서는 어디가 아프거나 슬퍼서 엉엉 울어도 그것이 하하호호 하는 웃음소리만 되어 나왔으니 세상에 그처럼 악한 마술이 어디 있고 그처럼 무시무시한 동산이 또 어디 있겠수.>


김일성의 ‘초(超)현실’과 반디의 ‘지독한 현실’

 김일성이 꾸며낸 낙원은 초(超)현실 세계였다.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우리 민족에게 김일성이 약속한 것은 낙원이었다. 그러나 김일성의 약속을 믿었던 사람들에게 돌아온 것은 일제의 지독한 식민통치보다 더 지독한 공산사회였다.

<준마의 일생>은 공산주의의 환상이 현실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인물이 나온다. 설용수! 그를 통해 광복 후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열렬히 환호할 수밖에 없던 까닭을 알게 되었다. 배고팠던 조선민족에게 쌀밥과 고깃국이 기다리는 사회를 선물하겠다던 공산주의자들의 외침. 설용수 또한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어보겠다며 공산당에 입당하는 날 느티나무를 기념 나무로 심었다.

<“그럼! 이제 저 나무가 저기 저 장공장 시멘트 굴뚝만큼 높아질 때면 말이다, 나무에 사탕이랑 과자랑 별거별거 다 열린단다.”
“피, 꽝포( 꽝 소리만 요란한 대포라는 뜻으로 ‘거짓말’을 이르는 말).”
“정말이다, 정말. 큰아버지가 꽝포 쏘디 원!”
“그럼 운동복도 달리나?”
“운동복뿐이겠냐, 입쌀에 고기에 비단옷에 기와집도 달리지!”
“야! 좋다!” 영일은 짜락짜락 손뼉을 쳤다.>

 공산사회가 이룩되는 날이면 천지에 쌀밥과 고깃국, 비단옷이 널려있을 줄 알았던 순수한 설용수. 그는 김일성이 목 놓아 부르짖던 인민의 낙원을 믿었고 자신의 평생을 김일성과 당을 위해 바쳤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이라곤 혹독한 겨울을 나게 해줄 나무 하나 자라지 않는 황량한 땅과 추운 겨울바람을 고스란히 머금은 당의 훈장만이 남은 지독한 현실이었다. 소설을 읽으며 어느새 내 눈에는 꼬마냇물이 생겼다. 엉엉 울고 싶었다. 그들의 빼앗긴 희망을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더 무서운 것은 공산주의 환상에 빠진 북한 주민이 아니었다. 이제는 환상도 남지 않은 주민들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였다. 그들은 김일성의 초(超)현실 낙원을 위해 초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유령의 도시>에 등장하는 북한사람들은 초인 그 자체였다. <유령의 도시>는 마르크스와 김일성 초상화를 두려워하는 어린 아들을 위해 집의 커튼을 쳤다는 이유로 도시에서 쫓겨난 ‘한경희’ 가족이 나온다. 한경희의 집 창가 어디에나 김일성과 마르크스의 초상화가 보였다. 소설 속 배경은 북한의 국경절 행사 전후다. 국경절 행사 당일 ‘한경희’는 아이가 아프단 이유로 행사에 제외되어 집에서 밖을 내다본다.

국경절 당일 아침부터 북한 전역(全域)엔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한경희는 폭포수 같이 쏟아지는 거센 비가 정시 행사 불가능이란 말처럼 보였다고 회상한다. 행사 45분 전에 그친 비, 그침과 동시에 주민들에게 내려진 명령. “시민들에게 알린다. 행사는 정시에 진행한다. 각 단체들과 행사 참가자들은 자기들의 집결 장소에 무조건 도착하라!” 정확히 40분 만에 광장에 모인 100만 군중, 단연코 그 순간 광장을 매운 사람들은 ‘초인’이었다. 그들은 왜 초인이 되었는가? 어떤 힘이 100만 군중의 기적을 만든 것인가? 한경희의 마지막 독백이 가슴을 찌른다.

<이제라도 또 ‘어비’의 영(令)이 내려진다면 45분이 아니라 그보다 더 빠른 시간에라도 무조건 광장으로 도둠질쳐(급하게 모이다) 대령을 해야 하리라고!>-‘유령의 도시’中-

 ‘어비’, 김일성 어버이의 영(靈)이 그들을 삼켜버렸다. 그 영이란 게 대체 무엇인가? 북한에 세워진 3만 8천개의 김일성 동상이 그의 영이 아닌가? 인간의 생명보다 사회적 생명이 귀하다고 가르치는 북한. 생명은 부모가 주지만 사회적 생명을 주는 분이 위대하신 영도자 김일성 어버이라고 가르치는 북한. 김일성 우상화를 위해 자행되는 감시와 폭력 앞에 북한 주민은 초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말 그들이 초인이라고 한들 100만 군중에게 남은 시간이 5분이었다면 어찌됐을까? 마음이 아려온다.

 


▲ TV조선에서 방영한 드라마 <한반도>의 한 장면. 주인공 황정민이 한반도 기를 들고 있다.


진짜 낙원을 위해

 반디가 소설을 통해 알린 북한의 끔찍한 현실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부모의 죄를 자식에게까지 묻는 연좌제 사회. 이름이 아닌 반동분자의 자식으로 불릴 것이 안타까워 소중한 생명을 지워야 하는 여자가 수두룩한 사회. 말일(末日)이 되면 배급받은 양식이 부족해 자신의 밥은 남편의 점심으로 남겨놓고 자신은 개밥 같은 것을 끓여먹어야 했던 아내. 김일성 동상에 바칠 꽃을 따기 위해 독사에 물려죽은 자식을 둔 부모가 김일성의 동상 앞에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야 하는 곳. 눈물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곳. 모든 것이 현실을 뛰어넘어 버린 초(超)현실 세계, 북한.

 반디가 책을 통해 고발한 곳은 북한이었지만 어쩐지 그 고발은 우리 사회를 향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을 방문한 남한의 유명한 모 소설가는 김일성 동상과 그 옆에 놓인 꽃을 보며 “우리가 체제는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 꽃송이에 담긴 인민의 순결한 마음 그 자체야 왜곡할 건덕지가 없지요”라고 했던가? 어쩌면 반디의 고발은 김일성이 말한 거짓 낙원을 찬양하는 철없는 남한 사람들을 향한 건 아닐까?

 반디는 김일성의 낙원이 실은 실낙원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그에게서 사지(死地)와 생지(生地)가 다르지 않다며 목숨을 내놓으라 하던 이순신이 떠오른다. 반디는 체제비판 소설《고발》을 쓰며 스스로 사지를 향해 걸었다. 그리고 그가 생지라 생각한 대한민국으로 소설을 보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진짜 낙원에서 하하 호호 웃어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는 그저 슬플 때 울고 기쁠 때 웃기 위해 진실을 적었고. 진실을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 대한민국엔 북한과 비교할 수도 없는 진짜 낙원이 펼쳐져 있다. 진짜 낙원에 사는 우리는 실낙원의 북한주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