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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빌 하이벨스 저)
김창대 조회수:8920
2016-04-01 01:35:12
1. 신앙
어디 쯤 왔을까. 언젠가 나도 모르는 사이, 물에 잠기듯 “예수 믿기 힘들다”는 사실에 잠겨버렸다. 예수를 믿는다는 게, 내가 걸어야할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는 게, 무수한 상처와 고난을 의미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언제부턴가 십자가의 길을 걷기 싫어졌다. 상처와 비난을 받기 싫었다. 고통 받기 싫었다. 아마 하나님께로부터 힘든 과제를 맡을까 두려웠나 보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
 
피할 구멍이 사라졌다. 동시에 두려움도 사라졌다.
 
 
2. 음성
하나님의 음성은 상황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그 음성은 다만, 상황 속에 있는 나를 변화시킬 뿐이다. 그리고 변화된 나는 변하지 않는 상황을 직면할 용기를 얻는다.
 
하나님의 음성은 상황을 순식간에 변화시키는 마법이 아니다. 그저 한걸음에 충실하라는 성실함의 요구다. 태풍이 휘몰아치는 광야에서도 한걸음을 내딛게 하는 성실함.
 
속히 탈출하고 싶은 고비를 성실함과 꾸준함으로 음미한다. 역경을 한걸음씩 즐긴다. 그분과 함께, 그분을 신뢰함으로.
 
 
3. 이기심-봉사
온전히 나만을 위한 것. 그 무엇보다 나에게만 집중하는 것. 나의 명예와 높은 지위. 나만을 위한 이기심엔 자유가 없다. 이상하다. 다른것보다 나에게 충실했는데, 나는 자유하지 않다. 이기심, 그것은 단지 스스로의 속박만을 의미할 뿐이다. 남을 위해 일해야 할 손으로 남을 위해 뛰어야 할 발을 움켜쥘 뿐이다.
 
참 자유는 하나님께 있는 듯 하다. 아이러니 하게도 하나님의 속박은 자유롭다. 그분의 속박은 족쇄나 올무가 아니라 울타리다. 푸른 초장 위에 놓인 울타리. 늑대와 사자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울타리. 그분의 속박은 안전선(安全線)이다. 그분의 구역 안에서라야 안심하고 뛰어 놀 수 있을 듯 싶다.
 
이기적인 자, 그 삶의 끝자락엔 한구의 차가운 시체밖에 남지 않는다. 재물도 남지 않는다. 권력도 남지 않는다. 자신의 죽음이 이용만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렇게 보니, 차가운 시체 한구를 위한 삶 보다 영원을 위한 삶이 훨씬 따뜻해 보인다.
 
인생은 투자인 듯 싶다. 투자의 결산은 장례식에서. 내 장례식엔 누가, 무슨 목적으로 오게 될까.
 
봉사는 희생이다. 하지만 결코 손실(損失)이 아니다.
봉사는 나를 포기하는 내어드림이다. 하지만 나만으로부터 탈옥한 참 자유이다.
 
4.믿음
믿음은 불확실이란 단어에 어울리는 말이다. 확실함은 믿는 게 아니라 보는 것이다. 믿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확실함을 믿는 건 믿음이 아니다. 그런 믿음의 신앙고백은 “나는 수학공식을 믿는다”는 격의 내용일 뿐이다.
 
음성은 불확실하다. 우리의 이성을 뛰어 넘는다. 우리의 오감(五感)을 초월한다. 언제나 새로운 이 음성은 언제나 새롭기 때문에 언제나 불확실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제나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은 베팅이다. 불확실함에 나를 거는 것이다. 그리고 확실한 응답으로 잭팟을 터트리는 것이다. 그 잭팟은 아마 나의 변화이지 싶다.
 
불확실이란 단어는 믿음이란 용어를 위해 존재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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