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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말, 나의 말 (남한산성)
김창대 조회수:17435
2016-04-01 01:38:00

1.

김상헌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 들었다.

 전하, 죽음이 가볍지 어찌 삶이 가볍겠습니까. 명길이 말하는 생이란 곧 죽음입니다.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신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143쪽)

 

김상헌과 최명길. 그들의 주장은 물과 기름이었다. 서로가 섞이지 않았고, 섞으려 해도 섞이지 않았다. 오히려 물과 기름을 섞으려 병을 흔들수록, 물과 기름은 서로 앞치락 뒤치락하며 요동쳤다. 물과 기름은 스스로를 진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맞고 남이 틀린 진리. 진리는 하나인데 서로 진리라 우기니, 둘 중 하나는 분명 거짓일 것이었다.

병자호란이 역사책에 기록된 지금에서야, 최명길의 말이 진리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내가 병자호란 당시 당하였다면, 무엇이 진리인지 어찌 알 수 있었을까.

“명은 귀하고 여진은 오랑캐”라는 사상 속에서 나는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2.

… 조정의 젊고 경박한 신진 서생 무리들이 사세를 멀리 살피고 깊이 들여다보는 식견 없이 오직 대의를 내세워 화친을 배척하는 준절한 언사를 쏟아 내어 청의 대군을 국경 안으로 불러들인 것이라고 … (209쪽)

 

“명은 귀하고 여진은 오랑캐다.”라는 사상이 팽배했나보다. 위의 인용구는 책 속 비판의 대가, 늙은 권신들이 한 말이다. 쉽게 말해, 청이 조선을 쳐들어 온 이유가 화친을 배격한 신진 서생 무리들의 언사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책에서는 신진 서생 무리들을 [멀리 살피고 깊이 들여다보는 식견 없이 오직 대의를 내세워 화친을 배척하는…]자들이라고 정의했다. 나의 모습이기 때문일까 너무나도 와닿는 말이다. 좀 더 쉬운 이해를 위해 풀어서 써보고 싶다.

 

신진 서생 무리, 정답을 알고 있는 지금에 와서 평가해볼 때, 정말 멍청해보이는 자들, 비판하기가 너무나도 쉬운 자들, 왜 그런 멍청한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자들.

하지만, 조선시대 당시엔 스스로가 진리를 쫓는자라고 생각했던 자들, 내가 틀린게 아니라 화친을 주장하는 너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자들. [멀리 살피고 깊이 들여다보는 식견 없이] 자신을 무오류하다고 착각하는 자들, 시대의 흐름에 무비판으로 헤엄치는 자들.

‘무엇이 진리인가에’ 대한 깊은 고찰없이 생각없이 너무도 단순하게 그것이 진리라고 믿는 자들. 생각 없이 웃사람의 말을 따르는게 예(禮)요, 시대의 풍조를 따라가는 것이 의(義)라고 생각하는 자들. 이 자들이 결국 사고(思考)없는 앵무새처럼 짖어대어 청의 대군을 국경 안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3.

임금이 말했다.

- 젊은이들의 말이 준일하구나. 그대들의 말이 그대들의 뜻인가?(272쪽)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거에 진리로 여겨졌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 진리가 아님을 보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모든 것은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로 빠질 것인가? 그럴 수 없다. 진리는 분명 존재하며 이것은 나의 이성이 아니요 믿음이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모더니즘은 포스트모던으로 부셔지고 있고 절대적 기준은 흐려지고 있다.

 

나의 학식은 짧고 식견은 어둡다. 하지만 살아남아야 하기에 나름 스스로 정답을 찾는다. 그리고 글로 이어나간다. 교정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세 번째 인용구를 다시 말하고 싶다.

[임금이 말했다.

-젊은이들의 말이 준일하구나. 그대들의 말이 그대들의 뜻인가?]

 

나의 말은 나의 말이어야 한다. 나의 말이 아무리 준일하다 하더라도, 남에게 박수갈채를 받는다 하더라도, 나의 말이 아니라면 남의 말밖에 되지 않는다.

나의 말속엔 나의 고뇌가 묻어있어야 하고, 나의 말속엔 ‘진정 이것이 맞는지’에 대한 끝없는 추궁과 의심이 묻어 있어야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끝없는 괴로움 속에서 핀 아름다운 꽃봉오리, 확신이 있어야 한다.

괴로움과 확신이 묻어있는 말이 나의 말이다. 또한 확신 없이 괴로움만 담겨있는 말은 아직 나의 말이 아닐 것이고, 괴로움 없이 확신만 담겨있는 말은 남의 말일 것이다.

 

그리고 내리는 결론. 나는 나로 존재해야 된다. 나는 개인으로 존재해야 된다. 남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책의 말에 대한 자신의 의견 없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남’이 되는 것이다. 결국 저자의 말과 나의 말이 같게 나올지라도 말이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듯이, 내가 나로 존재해야 남을 남의 존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에서야 진정한 공동체 의식을 형성할 수 있고,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 아닐까. 또한 내가 뜨거워 질 수 있는 자격도 생기는 것 아닐까.

 

내가 나로 존재하는 길엔 너무도 많은 괴로움이 나를 괴롭히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나로 가는 길에,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 과정이 끝없는 번뇌의 연속이고 한없는 고뇌의 연속 같아 보여 쉽게 발을 내딛질 못하겠다. 그저 포근한 이불을 덮고 안락하게 남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토저는 말한다.

 

우리는 안락대신 승리를 추구해야 한다.(이것이 성공이다, 187쪽)

 

나의 이 비루한 운명에 욕 한번 뱉어본다.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욕.

시원하게 욕 한번 뱉고 이불을 개려한다.

내가 나로 존재하는 길, 그 어두운 길, 칠흙 같은 어둠속에 바로 옆에 있는 것도 보이지 않아 목을 길게 빼고 쳐다봐야만 하는 나의 앞길 속에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걸어가길, 빛을 발견하고 진리를 발견하길

소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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