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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앞 바다에서 (칼의 노래)
공인국 조회수:6140
2015-05-17 10:10:50
20150516 공인국
칼의 노래

전쟁을 실존을 만든다. 고대희랍철학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인물, 브루노 스넬. 그가 쓴 “정신의 발견”에 이렇게 적혀있다. “정신은 정신이 발견된 순간부터 존재한다.” 정신은 본래부터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발견하지 않으면 모른다. 마찬가지였다. 실존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 죽음만큼 실존을 직시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죽음은 실존을 만든다. 그리고 전쟁은 실존을 대량생산한다. 실존주의자들이 그랬다. 이순신 통제사도 대량생산되는 실존을 피할 수 없었다. 그가 쓴 “한산도야음”에 실존은 절절하게 흘러나온다.

한 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새벽 달 창에 들어 칼을 비추네

탁 트인 한산도 앞바다에서 그가 고뇌했던 것은 실존이었다. 그의 근심이 있을 자리에 채워진 것은 실존에 대한 질문이었다. 죽음으로 실존을 맞이할 수 있다. 그는 새벽에 칼을 보고 있지 않았다. 달 빛에 비친 검명을 읽고 있었다.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에 물들이도다”
그리고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뿌린 피에는 자신의 피도 포함된다는 것을.

87페이지, “나의 사지는 내 앞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잘 죽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길은 너무 멀어서 끝은 보이지 않았다.”

한 번 휘두른 칼은 피 맛을 기억한다. 이 칼이 언제 내 피맛을 궁금해 할지 모른다. 모두의 칼이 그랬다. 모두의 앞은 모두가 죽기 좋은 자리였다. 상대를 벨 수 있는 곳이, 내가 베일 수 있는 자리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었다. 뒤돌아설 수도 없었다.

90페이지, “물러설 자리는 넓었지만 물러서서 살 자리는 없었다”


죽음은 실존적 질문을 던진다. '내가 이렇게 쉽게 죽을 수 있구나. 내가 이렇게 쉽게 죽을 존재인가? 나는 누군가.' 동시에 죽음은 그 질문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모든 질문은 끝난다.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은 끝난다.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죽음을 쉽게 말할 수 있었으면 쉽게 바다를 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실존을 쉽게 말했다면 목숨을 쉽게 내놓았을 거다. 전쟁은 죽음의 놀이 앞에서 한치 앞도 못 움직이는 상태로 만든다. 죽음으로 시작된 질문이 죽음으로 답을 내리지 못한다.

21페이지, “이 끝없는 전쟁은 결국은 무의미한 장난이며, 이 세계도 마침내 무의미한 곳인가.”

소크라테스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아는 것은 자신의 무지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고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그는 모든 지혜에 대해서 아마추어였다. 항상 질문만 했지, 대답을 말하지 않았다. 무지하다던 그가 식사 후에 커피 한 잔을 하듯, 독주를 마셨다. 죽음 앞에선 질문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걸까.
바다에서 이순신 통제사가 귀 기울인 소리는 무의미의 소리였다. 인간은 어디서 오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는 그저 칼에 귀를 기울였을 뿐이다. 알 수 없는 곳으로, 무의미한 세계로 인도하는 칼의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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