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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대부흥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조회수:6952
2017-08-08 17:53:00

저자 : 이 호

출판 : 거대넷

가격 : 10,000원

평양대부흥의 역사를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이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 변에 뿌린 순교의 씨앗은 원산대부흥을 거쳐 평양대부흥으로 꽃피웠다. 하디 선교사와 길선주 장로의 공개적인 회개는 대부흥의 기폭제가 되었고 한국교회는 부흥의 불길로 불타올랐다. 또한 한성감옥에서 청년 이승만의 가슴 속에 심겨진 복음은 ‘기독교 입국론’으로 이어졌다. 평양대부흥과 기독교 입국론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형성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여는 말 부흥이란 무엇인가? _9

1장 대부흥의 발원지(發源地), 순교자의 피
검룡소에서 한강까지, 토마스에서 대부흥까지 _17
조선과의 만남, 그 우여곡절 _24
제너럴 셔먼 호, 죽음의 항해 _31
순교의 씨앗, 대부흥으로 꽃피다 _38

2장 하디와 원산대부흥
부흥의 불꽃, 하디의 공개적인 회개 _49
부흥의 확산과 양심전(良心錢) 운동 _57
러일전쟁과 부흥운동, 그리고 이승만 _64

3장 을사늑약 전후의 한국기독교
국가적 위기와 복음의 기회 _75
웨일스와 인도에서 전해진 부흥 _82
영계(靈溪) 길선주(吉善宙) _89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_99

4장 한국의 오순절, 평양대부흥
타오르는 부흥의 불길 _111
길선주의 공개적인 회개 _120
대부흥의 확산 _127
회개하지 못한 죄, 방해와 핍박 _135
대부흥의 뒤안길, 희생과 순교_ 139

5장 대부흥의 성서적, 신학적 해석
조선의 갈릴리, 평양에서 일어난 부흥 _151
오순절, 죄를 이기는 성령의 강림 _155
복음주의 신학과 부흥에의 열정 _160
교회의 폭발적인 성장 _164
복음전도와 날 연보 _170
대부흥과 선교의 출발 _173

6장 대부흥의 사회적, 국제적 영향
대부흥과 사회개혁 _181
기독교 교육과 인재양성 _187
한국인들의 꿈, 기독교 한국 _195
선교사들의 비전, “동방의 등불” _203
기독교 입국론, 대부흥에 근거한 이승만의 외교(外交) _213

닫는 말 장대현교회로 본 민족사(民族史) _223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던 평양에서 1907년 대부흥의 역사가 있었다. 당시 조선은 일제의 침략으로, 바람 앞의 등불(風前燈火)처럼 위태로웠다. 모든 소망이 끊어진 우리 겨레에게 ‘복음’은 민족이 살아날 길을 제시해주었다. 눌려있던 백성들의 마음에서 죄에 대한 애통과 구원을 향한 간구가 분출되었고 이는 평양대부흥의 역사로 꽃피우며 조선 팔도로 뻗어 나갔다.

이호 목사의 신간 『평양대부흥』은 평양대부흥의 역사를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이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동강 변에서의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로부터 발원된 원산대부흥과 평양대부흥의 역사를 소개하고, 대부흥의 성서적?신학적 해석 및 사회적.국제적 영향에 대해서 설명한다.

대부흥의 역사는 선교사들의 희생과 순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를 시작으로 수많은 선교사들이 조선 복음화를 위해 애쓰다 과로와 질병, 박해로 죽어갔다. 루비 켄드릭이란 여선교사는 스물다섯의 꽃다운 나이에 죽었다. 그녀는 죽기 전 고향 텍사스의 부모님과 청년회원들에게 유언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바로 이것은 조선에 대한 저의 열정이 아니라 조선을 향한 하나님의 열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나에게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천 개를 모두 한국을 위해서 바치겠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교회의 빛나는 성장은 선교사님들의 땀과 눈물, 순교의 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대부흥의 역사는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진정한 회개와 그에 동반한 삶의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디 선교사와 길선주 장로의 공개적인 회개는 대각성의 기폭제가 되었고, 수많은 영혼들의 양심을 일깨우고 삶을 변화시켰다. 한 일례로 회개한 성도들은 과거에 횡령하거나 훔친 돈을 돌려주는 양심전(良心錢)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대부흥의 역사는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열망을 폭발시켰다. 은혜 받은 성도들은 복음을 전하는 데 시간을 드리겠다는 전도 서약, 날 연보를 작정하였다. 1909년에는 백만인 구령운동이 일어났다. 또한 조선 교회는 제주도로 이기풍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이어서 중국 산둥 성으로 해외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식민지의 어린 교회였지만, 힘에 벅차도록 사명을 감당했다. 그것은 효과적인 애국(愛國)이요 구국(救國)이 되었다. 조선이 중국에 선교사를 파송한 사실이 전 세계 기독교계에 보고되면서 강대국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이로 인해 훗날 우리는 서구 기독교 국가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대부흥의 역사는 한 개인의 구원에 머물지 않고 국가 전체를 살려냈다. 청년 시절 한성감옥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이승만은 ‘기독교 입국론’을 주장했다. 이승만의 기독교 애국주의와 대부흥의 역사가 맞물리며, 기독교는 독립운동과 건국의 초석이 된다. 대부흥의 역사를 기반으로 이승만은 미국의 지원을 이끌어낸다. 대부흥이 나라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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